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 (문단 편집) === 경찰 === * 경찰은 이날 충돌과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272개 중대, 즉 25,000여 명'''을 투입했다. * 경찰은 이날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광화문광장 북단에 세울 예정이었던 차벽을 걷어내고, 시위대의 행진을 보장하기로 했다. * 법원이 청와대 주변 행진을 허용한 가운데 경찰도 시위대의 행진을 막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을 허용한) 법원의 결정을 따르겠다”면서 “현재 동원된 경찰 차량도 이동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시위대의 행진을 막지 않고 있고 이후에도 막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현장과 좀 거리를 두긴 했어도 차벽과 살수차를 상시출동 가능하도록 대기라도 시켜 놓았던 지난 집회와 달리, 6차 민중 총궐기를 겪은 경찰은 이후 진압을 사실상 포기한다. 경찰이 훈련을 받은 경력을 다수 보유했다 해도 진압이 가능한 임계가 분명히 있는데 6차 민중총궐기(박근혜 퇴진 요구 집회로는 3차) 부터는 점점 불어날 시위대에 대항해 물리적으로는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후 경찰은 일관되게 청와대를 둘러 싼 최소한의 라인만 유지하며 시위대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돌발상황에서도 달래고(...) 설득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시위대가 갈수록 불어날 거라는 현실을 모른 건 박근혜 본인과 친박들 뿐(...)이었기 때문에 이런 경찰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이고 현명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전국의 의경들을 서울에 불러 모아 2008년에 했던 것처럼 찢고 갈라 각개격파 하면야 불가능하지만은 않겠으나, 이명박 시절 과잉진압으로 시위대를 자극해 폭력시위로 이어지며 경찰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나빠지고 여론은 여론대로 바닥쳐 직접 진압은 진압복 입은 직원(의경이 아니라 진짜 경찰들. 보통은 경찰 특공대.(...))만 투입하겠다고 방침을 정한지가 엊그제라 물리적 가능성을 떠나 경찰 입장에서 강제진압 자체가 큰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참고로 2008년 촛불 시위가 피크일 당시 최대 집결 인원이 주최 추산 20만이었는데 그 시기에도 경찰은 차벽을 둘러치고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밤이 깊어(혹은 동트기 직전) 시위자들이 귀가하기 시작하면 각개 쌈싸먹는 식으로 강제진압을 했을 뿐 전면전은 걸지 못했다.] * 내자로터리∼광화문∼안국로터리로 이어지는 율곡로까지 시위가 가능해졌다. 실제로 이날 법원의 결정 소식이 전해지자 경찰은 버스 차벽을 내자로터리 방면까지 후퇴했다.12일 오후 청와대 앞에 차벽과 경찰 병력들이 배치됐다. 광화문 코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 18:50분, 일부가 차벽을 우회해 500명이 청운동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 19:30분, 경복궁역 일부 출구[* 4번출구 등]를 의경이 적법한 절차없이 갑자기 폐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111218384550694|폐쇄 속보]] * 경찰은 내자동 로터리에서 약 50m 후퇴하여 시민들과 대치하였다. * 23:00에 경찰 병력이 [[차벽]] 뒤로 후퇴했다. * 경찰은 23시 57분까지 내자동 로터리 외에도 다른 청와대 진입로에 차벽을 설치하고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